노송리(老松里)

HOME > 노송리(老松里)

 

m02.png 노송리(老松里) 지명의 유래

해남군 산이면 노송리는 해남읍에서 서쪽으로 12km 떨어진 산이면(구명 : 이두반도(伊豆半島)과 마산면의 경계 지점인 주성산(周城山)아래 자리잡고 있다.

조상대대로 백당공 할아버지 후손만이 살아온 터전이다. 마을의 창명(創名)은 병자호란 3년 후인 서기 1639년 인조 17년에 강서 · 지촌 · 송은 세 분 조상께서 병자호란때 미처 나라에 다하지 못한 충절을 애통하게 여기시고 만년(晩年)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서호(西湖)의 옛 터에 소나무를 심으시고 노송정(老松亭)이라 이름하셨으니 지금의 노송리라는 향명은 이 노송정에서 유래된 것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선지(銑之)는 관군(官軍)으로,

강서 · 지촌 양공은 의병에 자진 참여하여 의병 모집과 군량 조달 및 군기(軍器)를 모취하여 노송리 앞 바다의 해로를 이용 명량대첩을 이룬 우수영으로 수송하는 작전준비의 중심지가 되었고 병자호란 때는 송은공의 아버지 강서공과 당숙 지촌공께서는 가산을 출의하여 서로 협심합력 하시어 모의청(募義廳)을 설치하고 군량과 군기를 마련하여 의병(義兵)을 이끌고 청주까지 가셨지만 인조께서는 화의하여 피란하셨던 성을 나오시어 경기도 광주군 한강 연안에 있는 보통 송파(松坡)나루라고도 부르는 삼전도(三田渡)에 수항단(受降壇)을 쌓고 왕이(仁祖) 청태종에게 항례를 치른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분통하여 통곡하시었다.

 

이때가 1637년 인조 15년 정월 30일이니 우리나라 건국이래 가장 치욕적인 항복이었다.

이때 송은공께서는 3일간을 검식하시면서 지으신 시를 보면 다음과 같다.

황명일월암풍사 皇明日月暗風沙

격검중소강개다 擊劍中宵慷慨多

나라의 해와 달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에 어두어졌으니

칼을 치는 이 한밤 슬픔만이 치미네

백수고신안소적 白首孤臣安所適

호산일로향남사 湖山一路向南斜

늙고 외로운 신하가 가야할 곳은 어디메뇨?

호남을 향한 큰 길이 남녘으로 뻗어 있네.

 

위 시에 담긴 뜻 그대로 충절심(忠節心)에서 우러난 유서 깊은 이명(里名)이니 후손들은 고향 마을의 유물유적을 보호관리 하면서 자자손손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나라에 충성하는 명문거족(名門巨族)의 위상을 지켜가야 할 것이다.

 

 

m02.png 노송리(老松里) 지명의 유래

해남군 산이면 노송리는 해남읍에서 서쪽으로 12km 떨어진 산이면(구명 : 이두반도(伊豆半島)과 마산면의 경계 지점인 주성산(周城山)아래 자리잡고 있다.

조상대대로 백당공 할아버지 후손만이 살아온 터전이다. 마을의 창명(創名)은 병자호란 3년 후인 서기 1639년 인조 17년에 강서 · 지촌 · 송은 세 분 조상께서 병자호란때 미처 나라에 다하지 못한 충절을 애통하게 여기시고 만년(晩年)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서호(西湖)의 옛 터에 소나무를 심으시고 노송정(老松亭)이라 이름하셨으니 지금의 노송리라는 향명은 이 노송정에서 유래된 것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선지(銑之)는 관군(官軍)으로,

강서 · 지촌 양공은 의병에 자진 참여하여 의병 모집과 군량 조달 및 군기(軍器)를 모취하여 노송리 앞 바다의 해로를 이용 명량대첩을 이룬 우수영으로 수송하는 작전준비의 중심지가 되었고 병자호란 때는 송은공의 아버지 강서공과 당숙 지촌공께서는 가산을 출의하여 서로 협심합력 하시어 모의청(募義廳)을 설치하고 군량과 군기를 마련하여 의병(義兵)을 이끌고 청주까지 가셨지만 인조께서는 화의하여 피란하셨던 성을 나오시어 경기도 광주군 한강 연안에 있는 보통 송파(松坡)나루라고도 부르는 삼전도(三田渡)에 수항단(受降壇)을 쌓고 왕이(仁祖) 청태종에게 항례를 치른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분통하여 통곡하시었다.

 

이때가 1637년 인조 15년 정월 30일이니 우리나라 건국이래 가장 치욕적인 항복이었다.

이때 송은공께서는 3일간을 검식하시면서 지으신 시를 보면 다음과 같다.

황명일월암풍사 皇明日月暗風沙

격검중소강개다 擊劍中宵慷慨多

나라의 해와 달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에 어두어졌으니

칼을 치는 이 한밤 슬픔만이 치미네

백수고신안소적 白首孤臣安所適

호산일로향남사 湖山一路向南斜

늙고 외로운 신하가 가야할 곳은 어디메뇨?

호남을 향한 큰 길이 남녘으로 뻗어 있네.

 

위 시에 담긴 뜻 그대로 충절심(忠節心)에서 우러난 유서 깊은 이명(里名)이니 후손들은 고향 마을의 유물유적을 보호관리 하면서 자자손손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나라에 충성하는 명문거족(名門巨族)의 위상을 지켜가야 할 것이다.